현수막 등 버려지는 폐기물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가치가 높은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새활용’ 또는 ‘업사이클링’이라 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하천에 방류되어 흘러갈 하수를 처리해 첨단산업 사업장에 용수로 공급하는 활동도 ‘물 새활용’이라 할 수 있다.
경기권역 반도체 사업장 1단계 물 재이용 사업이 첫발을 내디뎠다. 환경부는 이달 11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서 지자체 및 관련 기관과 이 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사업은 하수를 재이용해 반도체 공업용수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는 2022년 5월 반도체 사업장이 하수 재이용수를 공급받기 원한다는 의사를 표현한 이래 수차례 민관협의체와 논의를 거쳐 사업안을 확정한 끝에 맺은 결실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하수는 쓰고 버린 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6년 ‘
하수도법’이 개정되고 2010년에 ‘물의 재이용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을 본격적으로 재이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전체 하수의 약 15%에 해당하는 약 11억4000t의 하수를 재이용하는 등 하수 재이용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다만 그동안 하수는 간단한 처리 이후에 하수처리장 내에서 사용되는 장내 용수로 사용되거나 하천의 유량을 보완하는 하천유지 용수로 주로 쓰였다. 그러던 와중에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227일 동안 지속된 영산강, 섬진강 유역의 기록적인 가뭄은 새로운 ‘물그릇’ 확보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하수 재이용수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미 해외에서는 하수를 재이용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3년 하수처리 시설에서 정수한 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수자원 확보가 어려운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도 2060년까지 자국의 식수 및 공업용수의 수요량 55% 이상을 하수 재이용수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뉴워터(NEWater)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섬나라인 대만 역시 하수를 재이용해 공업용수로 공급하는 비중을 늘리고 있다. 호주는 댐, 정수장, 하수 재이용 시설을 연계해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워터 그리드 프로젝트’를 시행한 바 있다.
하수는 인간이 물을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는 가뭄 시에도 활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자원으로 대체될 수 있다. 특히 하수는 상시적으로 공급 가능한 특성 때문에 공업용수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 이는 공장 가동 중단이 천문학적인 경제적 피해를 발생시키는 첨단 산업 분야에서 매우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환경부는 반도체 등 첨단 산업단지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이에 따른 산업용수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하수를 재이용해 공업용수로 공급하는 비중을 점차 늘릴 계획이다.
환경부는 이번 경기권역 반도체 사업장 1단계 물 재이용 사업을 시작으로, 하수가 처리장 내에서 단순 ‘재이용’되기보다는 공업용수로 ‘새활용’되도록 적극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하수를 이용해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초순수를 제조하고, 이를 상용화하는 고부가가치 물 산업으로 발전시켜 ‘물 새활용’의 미래까지 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