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전신인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은,
국모인 명성황후가 왜놈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일이다.
명성황후가 왜놈들에게 계획적으로 살해 되던날, 왜놈들의 길 안내를 한 사람은 조선인 우범선이다.
그는 당시 황궁 수비를 위한 별기군 대대장이었다.황궁을 지켜야 할 군인이 오히려 적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보복을 두려워한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해 일본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고, 아들이 여섯살 되던해 조선인 애국지사에게 피살된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그의 아들은, 고된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일본 대학을 졸업하고 농림성에 취직을 했다.그러나 창씨개명과 일본 국적 취득을 반대하다, 결국 사표를 내고 도키이 종묘 회사의 농장장으로 직장을 옮긴다.
1945.8.15 해방이후 일본에서 채소나 과일의 종자를 수입했던 우리나라는,우범선의 아들이 육종학 (종 자개발) 전문가 임을 알고, 그의 귀국을 추진하였으며, 그는 처와 자식및 어머니를 일본에 남겨두고, 단신으로 귀국하여 임종시까지 일본을 찾지 않았으며, 귀국후 한국농업과학 연구소 소장에 취임했다.
그 뒤 제주도 감귤및 강원도 감자 병충해 등에 적응력이 뛰어난, 무와 배추의 종자를 개발하였으며, 낙후되었던 한국의 농업근대화에 커다란 공을 세운다.
그러자 정부에서 그에게 농림부 장관직을 제안했으나,
그는 정중히 장관직을 거절하고 종자 개발에만 헌신했다.
농업근대화의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은 그는1959년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는다.
그가 바로 씨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진 우장춘 박사다.
참으로 父子의삶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슬픈 과거사다.
아이러니하지만 스스로 수치스런 과거 역사를 잊지 않고,
농림부 장관직을 고사 함으로써 국치의 과거사로 부터,
국가 자존을 지키고 나라 발전에 혼신을 다 바친 처신에,
지난 날 과오의 역사를 위안하면서 삼가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