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정화조 가격, 과연 적정한가?
제주도 정화조 가격, 과연 적정한가?
최근 제주도에서 개인 오수처리시설 설치 기준이 강화되면서, 이에 따른 정화조 가격 인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정화조 설치 비용이 기존 200만 원대에서 1500만 원까지 급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 측은 이러한 비용 상승이 지하수 보호와 주민 건강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는 입장이다.
제주도의 물 공급 주요 자원은 지하수로, 현무암 기반의 다공질 지질 구조로 인해 지표 오염원이
지하로 쉽게 스며드는 환경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민이 사용하는
지하수는 약 19년 전의 오염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발생하는 오염 또한 20년
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오염 방지와 오수처리시설 관리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제주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내 오수처리시설의 약 70%가 방류수 수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주요 원인으로 저가 불량 FRP 제품이 지목되었다.
이러한 지하수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도는
2022년 도시계획조례 개정을 통해 표고 300m
이상의 중산간 지역에 사실상 개인주택 정도만
건축을 허용하려 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 주민들과
건설업계의 반발이 이어져 난항을 겪던 중, 이듬해
하수도법 개정으로 지자체가 오수처리시설 설치
기준을 별도로 고시할 수 있게 되면서 제주도는 위의
조례 개정을 철회하고 오수처리시설 설치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발과 환경 보호 간의 균형을
맞추기로 했다. 이 같은 오수처리시설 설치 기준
강화는 제주도만의 상황이 아니다. 당진시와 여수시 등도 법 개정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시설 기준을
운영해 왔다.
현재 제주도의 설치 기준은 1990년대 초 FRP 오수처리시설이 국내에 도입될 당시의 규격과 유사하다.
앞서 강화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나, 사실 90년대 초의 기준으로 회귀한 것에 가깝다. 당시
오수처리시설 도입 초기 가격은 제주도의 현재 가격과 비슷했으며, 그 흔적은 물가 정보지에서도
확인된다. 이후 삼십여년 간 대량 생산, 효율성 증대, 업체 간의 치열한 가격 경쟁이 이어지고, 품질
저하·규격 이하의 저가 불량 제품이 전국적으로 유통되면서 주택용 3톤 규모 오수처리시설의 공장도
가격은 원가 이하인 100만 원 선까지 하락했다.
현재 제주도의 정화조 가격은 적정 품질 유지와 성능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제조 비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격이 이만큼이나 오를 수가 있냐’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저가 불량 제품은 배제하더라도, 대량생산·효율성 증대·업체 간의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에 도입 초기와 같은 가격대가 형성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재료비 상승의 영향도 일부 있었겠지만, 이번 가격 인상이 물가 상승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지역에서는 정화조 가격에 큰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이 문제의 원인은 단순하다. 장기간 저가 불량
제품이 시장에 유통되면서 제조업체들이 정상
제품을 제작할 기술력을 상실한 것이다. 일부 업체는
1990년대 초에 제작 가능했던 원형침전조 조차 현재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는 지나치게
가격 경쟁에 몰두하면서 기술 개발을 등한시한
결과로 해석된다.
제조업체 뿐만 아니라, 시공업체의 상황 또한 심각하다. 저가 불량 FRP 처리시설이 유통을 장악하면서
제주도의 지역 우수 업체들이 사라졌고, 현재 오수처리시설 설계와 시공 역량을 모두 갖춘 도내 업체는
1~2곳에 불과하다. 제조와 시공에서 모두 새로운 진입 장벽이 생긴 셈이며, 이번 가격 인상은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은 하락할 수 있지만, 그 속도는 도내 업체의 기술력
확보와 경쟁력 회복 속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제주도의 오수처리시설 기준 강화는 단순히 가격 상승을 초래하는 조치가 아니라, 환경과 주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이다. 지하수 의존도가 높은 제주도의 특성상 강화된 기준은 단기적
규제를 넘어선 장기적 투자로 평가되며, 오염 발생 후 이를 복구하는 비용은 현재의 기준 강화를 통한
사전 예방 비용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이러한 선제적 조치는 제주도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결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된 오수처리시설 설치 기준은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제주도의 환경과 주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로 이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