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6일, 하수도법 시행령 별표 1의6 개정에 따라 개인하수처리시설의 설계⋅시공⋅부속설비 등 설치 기준에 필요한 세부 사항을 지방자치 단체장이 고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대해 일부 개인하수처리시설 제조업자들이 반대 의견을 표하고 있다. 그들은 지자체가 세부 기준을 정할 경우 콘크리트 구조에 비해 FRP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방류수질 기준을 담보할 수 없는 저성능의 콘크리트 처리시설 설치가 늘어날 것이며, 애초에 FRP 처리시설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성능 검사를 받은 제품이므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먼저 지자체가 세부 설치기준을 고시할 수 있도록 한 배경에 대해 살펴보겠다.
사실 2022년 12월 6일 하수도법 시행령 개정 전에도 많은 지자체에서 이미 개인하수처리시설의 설계⋅시공⋅부속설비 기준을 운영하고 있었다.
2011년 당진시를 시작으로 이천시(2021), 원주시(2015), 여수시(2021) 등 많은 지자체에서 세부 설치 기준을 마련했으나, 법적 근거가 부족해 이 기준을 적용하는 데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제주도의 경우에만 특별법에 따라 하수도법 일부 항이 위임되어 조례 제정이 가능했다. 왜 지자체가 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나서서 기준을 제정하고 운영했을까?
가장 최근의 사례로 2020년 여수시의 경우를 살펴보겠다. 2012년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가 히트를 친 후 여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떠올랐다. 숙박시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오폐수 방류로 민원 또한 급증하자, 여수시는 돌산 인근의 오수처리시설 53개소에 대한 집중 지도점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일일 처리용량 50톤 미만 시설의 경우 32개소 모두가 FRP 제조 제품이었으며 시설의 비정상 운영율이 51%에 달했다. 이 중 방류수 수질 기준을 2배 이상 초과한 경우는 15%, 3배 이상 초과한 경우는 85%로 확인되었다.
일일 처리용량 50톤 이상 시설의 경우 21개소 중 FRP 구조인 8개소의 비정상 운영율은 63%, 콘크리트 구조인 13개소의 비정상 운영율은 38.4%이었다. 이중 방류수 수질 기준을 2배 이상 초과한 경우는 FRP 구조가 80%, 콘크리트 구조가 20%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FRP 구조의 처리시설이 수질 오염 문제의 주요 원인임을 보여준다. 여수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인하수처리시설 설계⋅시공지침을 마련하였고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했다.
개인하수처리시설에 대한 문제점은 지난 5월 무안군에서 고속철도 현장의 오수처리시설 16개소를 점검한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점검 결과 성능검사를 받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63%인 10개소가 방류수질 기준을 초과했으며, 그 중 80%가 방류수 수질 기준을 3배 이상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당 현장은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전문 관리자가 위탁받아 유지 관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는것이 다소 충격적이다.
위 내용은 처리시설 관리 및 운영 이전에 FRP 제조 제품의 성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혹을 자연스럽게 품게 되며, 오수처리시설 제조 제품의 방류수질 불합격율이 73%라는 연구자료의 신빙성에 힘을 실어준다.
다음으로 세부 설치 기준 고시로 인해 FRP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방류수질 기준을 담보할 수 없는 저성능의 콘크리트 처리시설 설치가 늘어날 것이라는 개인하수처리시설 제조업자들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겠다.
하수도법 시행령 개정 이전에 세부 설치 기준을 운영했던 제주도, 당진시, 여수시의 법 개정 이전 3년간 처리시설 설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아래 표와 같이 콘크리트 시설의 설치 비중은 전체 처리시설의 1% 미만 이었다.
성능검사 또한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현 제도상 한 번 등록받으면 재검증 없이 영구히 유지된다. 현재 판매 중인 오수처리시설 제품의 대부분은 약 17년 전인 2007년 전후에 성능검사를 받은 제품이며, 최근 10년 동안 신규 성능검사를 통과한 제품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검증기관이 변경된 후 검증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제조업체들이 성능 검사를 통해 제품의 품질을 입증하는 대신, 단순히 제작 의뢰 형태로 제품을 공급하여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술 개발이 저해되고, 불량 제품이 시장에 유통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다시 위의 표를 보면 FRP 구조의 경우 제조 등록 제품보다는 제작 의뢰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제작 의뢰는 개인하수처리시설 설계⋅시공업자가 자신이 도급받은 공사에 대해 제조업자에게 처리시설의 제작을 요청하는 것으로, 제조업자가 설계하여 직접 제작 할 수 없다. 하지만 위 표에서 보듯 많은 수의 제품이 제작 의뢰되고 있어 이는 제조업자들이 법을 교묘히 어기고 불법적으로 등록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위 사례들은 불량 FRP 처리시설이 방류수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수질 오염 문제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실정에 따른 세부 설치 기준을 제정하여 이에 따라 오수처리시설을 개선하고 철저하게 관리·운영해야 한다.
최근 안동댐과 영주댐에서 발생한 녹조 현상은 오수처리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오수처리시설은 생태계 보호와 주민 건강에 직결되어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