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람 목숨보다 ‘생산 편의’가 먼저…법 흔드는 하수도 행정, 바로 세워야
2026-05-14
[기고] 사람 목숨보다 ‘생산 편의’가 먼저…법 흔드는 하수도 행정, 바로 세워야기자명생활하수협회 한운철 회장입력 2026.05.14 08:01수정 2026.05.14 11:04댓글 0공유인쇄본문 글씨 키우기본문 글씨 줄이기지금 우리 하수도 행정은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자체마다 제각각인 기준으로도 모자라, 그나마 강화된 안전·수질 기준마저 일부 업계의 반발에 밀려 후퇴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서조차 “불편하다”, “번거롭다”는 이유가 기준 완화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하수처리시설은 단순한 설비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배출하는 오수를 정화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마지막 방어선이자, 관리자의 생명이 위협받는 고위험 작업 공간이다. 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흔들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과 환경으로 돌아온다.최근 일부 현장에서 제기되는 기준 완화 요구는 상식을 벗어난다. 유해가스가 가득한 밀폐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시설에서조차, 구조조차 어려운 협소한 작업 환경을 유지하겠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규제 완화 요구가 아니라, 사실상 위험을 방치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수질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기본적인 구조와 장치조차 “기존 제품에 없다”는 이유로 제외해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기술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기준을 낮추려는 태도,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산업의 모습인가.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정화되지 않은 오수, 악취 나는 하천,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떠안게 된다.더 황당한 것은 ‘시민 부담’을 앞세운 논리다. 안전과 직결된 기준을 낮추는 이유가 시민의 비용 부담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 구조를 들여다보면, 개인하수처리시설 비용은 공공 하수관 연결에 따른 부담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결국 시민을 위한다는 명분 뒤에 숨겨진 것은 생산의 편의와 비용 절감일 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경기 지역에서는 의미 있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녹색환경지원센터와 경기보건환경연구원을 중심으로, 경기도 공무원, 생활환경 관련 협회, 제조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수도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 방향을 논의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핵심은 단 하나였다. 지금과 같은 ‘고무줄 기준’으로는 안전도, 수질도 지킬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침 보완이 아니라 「하수도법」 자체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었다.참석자들은 특히 설계·시공 기준의 국가 단위 명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처럼 중앙정부가 구체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지자체에 상당 부분을 맡기는 구조에서는, 지역별 편차와 이해관계 개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기준은 원칙이 아니라 협상의 대상이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 종사자와 국민에게 돌아간다.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환경부는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현장의 혼란을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권고’나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명확하고 강제력 있는 기준이다. 설계, 시공, 유지관리, 안전, 수질 전반에 걸친 최소 기준을 「하수도법」 개정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통일해야 한다.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서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며, 기준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경기 지역에서 시작된 문제 제기는 단순한 지역 이슈가 아니라, 대한민국 하수도 행정 전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경고다.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환경부가 책임 있게 나서지 않는다면, 무너진 기준의 대가는 결국 국민의 생명과 환경으로 돌아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법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